Hobby

드럼을 배워 볼까. 그리고 옛날 이야기 한조각...

글라카엘 2022. 5. 16.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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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악기 중에 드럼을 가장 좋아했다.

 좋아하게 된 계기는 중학교 2학년 때 이던가 친한 친구 녀석이 레코드 샾에 같이 갔다가 부활 1집을 들어보라고 했는데 당시 나는 그냥 시큰둥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이 녀석이 갑자기 그 테이프를 들고 가게 밖으로 나가서 막 뛰어 가버린 거다. 나는 일단 계산을 하고 그놈을 쫓아갔는데 나중에 친구 놈이 너무 들려주고 싶어서 그랬단다.

 집에 와서 들어봤는데 음악이 너무 좋은거다. 다음날 그 친구한테 음악이 너무 좋더라고 하니 친구가 거보라고 하며 씩 웃었고 우리는 한동안 이 노래가 어떠네 저 노래가 어떠네 하면서 나중에는 2집도 같이 들었던 거 같다.

 그런데 이때 부터 드럼 소리가 너무 듣기 좋은 거다. 그래서 집에서 안 쓰는 깡통이나 플라스틱 통으로 내 맘대로 드럼을 만들어서 치고 진짜 드럼을 치는 상상을 하곤 했다. 나중에는 친구 몇 놈이 모여서 화장실에 모여 앉아서 나의 말도 안 되는 드럼 소리에 노래를 부르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바보 같은 일이지만 당시는 꽤나 진지 했었다. 녹음도 해서 들어보고 좀 아쉬우면 다시 녹음하고 꼭 음반 만드는 것처럼 흉내를 냈었다. 그 테이프를 지금도 가지고 있었으면 참 재밌을 거 같은데 애석하게도 그렇지 못하다.

 이후로 20살때인가, 한 달 정도 드럼 학원을 다닌 적이 있었다. 드럼 세트에 앉아서 쿵짝 쿵짝 하고 마구 치고 싶은 순진한 내 맘과 달리 거의 한 달을 고무판만 두들겼다. 물론 기초가 중요하지만 정말 너무 지겨웠었던 거 같다.
그러다가 한달이 다 되어갈 무렵 원장 선생님이 드디어 진짜 드럼을 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내 기억에 지하 1층에 합주실이 있었는데 거기에 진짜 드럼이 있었다.

'우와 드디어 진짜 드럼을 쳐보는구나.'

싶었는데 이미 나보다 먼저 연습 중인 처음 보는 또래 친구가 있었는데 이 친구는 수준급이었다.
기억하기로는 문앞에서 부터 신나는 드럼 소리가 막 들리고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상의를 벗고 진짜 Rock 밴드 드러머처럼 에너지 넘치게 치고 있었던 거 같다.
하필이면 나는 그 친구 다음에 치는 거라 그 앞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당시 그 학원에 드럼이 1대 뿐이라 그런 식으로 운영이 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한동안 치더니 그때서야 내가 기다리고 있는 게 생각이 났는지 미안하다고 하고선 옷을 입고 드럼 세트에서 내려왔다.

 그런데, 이친구가 가는 줄 알았는데 앞에 앉아서 나를 보고 있는 거 아닌가...
괜히 주눅이 들어 기본 박자를 치는 데로 스틱끼리 부딪치고 했던 거 같다. 너무 부끄러웠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히 오래 배운 그친구랑 이제 처음 쳐보는 나랑 비교한다는 거 자체가 말이 안 되고, 지금 나라면 아무렇지 않게 쳤을 텐데 그때는 그게 너무 신경이 쓰였다.

결국 오래 쳐보지 못하고 하는둥 마는 둥 하고 나왔는데 그게 내 마지막 제대로 된 드럼 배우기였다.
당시 집안 사정으로 다음달 등록은 하지 못했다.

이후로도 공연장 같은 곳에서 드럼 소리가 들리면 가슴이 쿵쾅 거리며 뛴다.

얼마 전 와이프가 더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한번 배워보라고 용기를 북돋아 줬다.
이전에도 여러번 배워보라고 한 적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나는 '에이. 지금 배워서 뭐하게', '아이고 마 됐다. 귀찮다.', '다음에 함 해보지머' 라며 미뤘었다.
딱 한번 드럼교습소를 들어가기까지 한 적이 있었는데, 그게 참. 하지 말라고 그랬는지 하필 드럼 담당 선생님이 부재중이라 기다리라고 해서 기다리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도 않고 안내해준 직원인지 다른 악기 선생님인지 하는 분도 나를 따로 챙기거나 말을 걸어주지도 않는 거다. 머 어디서 오셨냐는 둥, 학원 관련해서 얘기나 좀 해주거나 구경을 시켜주거나 했었으면 더 기다렸을 텐데. 이 학원은 그다지 친절하지 않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냥 나왔었다. 

이번에는 진짜 한번 배워볼까 싶은 생각이 든다. 최근에 시간이 좀 많기도 하고.

드럼을 칠때는 잡생각이 없어진다고 한다. 치다가 딴생각을 해서 박자가 꼬이면 안 되기 때문에 집중을 해야 해서 그렇다는데 나한테 딱 필요한 효과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