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5. 18. 13:46ㆍBook
폴 블룸(Paul Bloom)의 『Just Babies: The Origins of Good and Evil』은 인간의 도덕성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인지, 아니면 후천적으로 습득되는 것인지에 관한 오랜 철학적 논쟁에 과학적 증거를 제시하는 획기적인 저작입니다. 존 로크(John Locke)부터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까지 많은 철학자와 심리학자들은 인간이 '도덕적 백지 상태(blank moral slate)'로 태어난다고 믿어왔습니다. 그러나 블룸은 예일대학교에서 진행한 혁신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이 통념에 정면으로 도전합니다.
아기의 선천적 도덕 감각: 실험적 증거
도움과 방해를 구분하는 능력
블룸과 그의 연구팀은 9~12개월 된 아기들을 대상으로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아기들에게 눈이 달린 기하학적 도형들이 언덕을 오르내리는 장면을 보여주었는데, 한 도형은 다른 도형이 언덕을 오르는 것을 도와주고, 또 다른 도형은 방해합니다. 연구 결과, 아기들은 '오르는 도형'이 '방해하는 도형'보다 '도와주는 도형'에 접근할 때 더 적은 시간 동안 응시했습니다. 이는 아기들이 예상치 못한 상황(방해자에게 접근하는 행동)에 더 오래 주목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아기들이 실제로 선택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도와주는 도형'을 선호하여 손을 뻗는다는 사실입니다. 이 효과는 오르는 도형이 생명이 없는 것으로 묘사될 때는 사라졌는데, 이는 아기들이 사회적 상호작용의 도덕적 측면을 인식한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공정성과 정의감
연구에 따르면, 16개월 된 아기들도 자원(예: 간식이나 장난감)을 공평하게 분배하는 인형을 선호하고, 불공평한 분배에 놀라움을 표현합니다. 이는 아기들이 공정성에 대한 기본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공감과 연민: 도덕성의 기초
블룸은 공감(empathy)과 연민(compassion)을 구분하여 설명합니다. 공감은 타인의 감정을 함께 느끼는 것이고, 연민은 타인의 복지에 관심을 갖고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고자 하는 욕구입니다.
거울 뉴런과 공감 능력
공감의 신경학적 기초로 종종 거울 뉴런(mirror neurons)이 언급됩니다. 이 뉴런들은 우리가 행동을 수행할 때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을 관찰할 때도 활성화됩니다. 그러나 거울 뉴런과 공감 사이의 관계는 복잡하며 완전히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공감은 또한 상대방에 대한 우리의 생각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습니다.
아기의 연민 행동
매우 어린 아이들도 고통받는 타인을 위로하고, 자발적으로 성인의 과제를 돕는 등의 연민 행동을 보입니다. 이러한 행동은 연민이 단순히 학습된 행동이 아니라 우리의 선천적 사회적 본성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선천적 도덕성의 한계
블룸은 인간이 도덕적 감각을 타고나지만, 이 선천적 도덕성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낯선 사람들에게 적대적이며, 편협함과 편견에 빠지기 쉽습니다.
집단 편향과 편협함
아기와 어린이는 가족이나 자신과 가까운 집단에 더 강한 공감과 친절을 보이는 반면, 낯선 이에게는 배타적이고 때로는 적대적일 수 있습니다. 블룸은 이를 "우리는 본능적으로 편협하고, 집단 이기주의적이며, 때로는 선천적 편견을 가진 존재"라고 설명합니다.
혐오감의 역할
혐오감은 원래 해로운 음식이나 병원균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 진화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이 감정은 성적 도덕성과 같은 도덕적 영역으로 확장되어 근친상간이나 동성애와 같은 행동에 대한 판단에 영향을 미칩니다. 혐오감을 유발하면 사람들이 도덕적 위반을 더 가혹하게 판단하게 되지만, 블룸은 혐오감이 신뢰할 수 없는 도덕적 지침이며 편견을 조장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이성과 도덕적 발전
블룸은 성인의 도덕성이 단순히 본능이나 무의식적 편향에 의해 결정된다는 최근의 유행적 견해를 거부합니다. 그는 과학적 발견이 이성에 의해 이루어진 것처럼, 도덕적 발견도 이성과 숙고를 통해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이성의 중요성
블룸은 "감정 + 이성"이 진정한 도덕성의 기초라고 주장합니다. 즉, 본능적 감정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이성적 사고와 숙고, 상상력이 도덕의 범위를 넓히고 사회적 진보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도덕적 발견과 진보
노예제의 부당함을 깨닫고 사회가 변화한 것처럼, 인간은 이성과 숙고를 통해 도덕적 발견을 할 수 있습니다. 블룸은 우리의 상상력, 연민, 그리고 인간 고유의 이성적 사고 능력을 통해 타고난 원시적 도덕 감각을 초월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다양한 도덕적 현상 탐구
사이코패스와 도덕성
사이코패스는 도덕적 규칙을 이해하지만 공감 능력이 부족해 비도덕적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도덕적 지식과 도덕적 행동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보여줍니다.
공정성, 지위, 처벌
아기와 어린 아이들은 자원의 공평한 분배를 선호하고 보상의 공정성을 기대합니다. 인간 사회는 평등주의와 지위 문제를 조롱이나 연합 구축과 같은 사회적 메커니즘을 통해 균형을 맞춥니다. 도덕 심리학에는 복수와 제3자 처벌에 대한 욕구가 포함되며, 이는 협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보복의 순환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종교, 정치, 인종에 관한 도덕적 감정
블룸은 우리가 종종 혼란스러워하는 성, 정치, 종교, 인종에 관한 도덕적 감정도 탐구합니다. 이러한 영역에서 우리의 도덕적 판단은 종종 복잡하고 때로는 모순적입니다.
『Just Babies』의 핵심 메시지
- 선천적 도덕성: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기본적인 도덕적 감각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공정성, 공감, 연민, 정의감 등으로 나타납니다.
- 도덕성의 복잡성: 우리의 자연적 도덕 감각은 친절함과 잔인함을 모두 포함하며, 진화적, 발달적, 문화적 요인에 의해 형성됩니다.
- 이성의 역할: 아기들은 도덕적 감정을 가지고 있지만, 성인은 지능과 숙고를 통해 선천적 편견을 초월하고 도덕적 통찰력과 진보를 달성합니다.
- 도덕적 한계 극복: 우리는 상상력, 연민, 그리고 이성적 사고를 통해 타고난 도덕성의 한계를 극복하고 더 넓은 도덕적 지평을 열 수 있습니다.
『Just Babies』는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통찰과 함께, 우리가 어떻게 본능을 넘어 더 넓은 도덕적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희망적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아기의 실험에서 시작해 성인 사회의 도덕적 딜레마까지 폭넓게 다루는 이 책은 도덕심리학, 진화심리학, 철학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반드시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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