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ne Roses(스톤 로지스) : 영국 인디 록의 혁명을 일으킨 맨체스터의 전설

2025. 4. 3. 21:55Hobby

Source : https://tidal.com/magazine/article/stone-roses-30/1-55050

 

맨체스터 출신의 영국 록 밴드 The Stone Roses는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 영국 음악계를 뒤흔든 전설적인 그룹입니다. '매드체스터(Madchester)' 운동의 선구자로서, 이들은 단 두 장의 정규 앨범만으로도 영국 음악의 역사를 새롭게 써내려갔습니다. 오늘은 이 혁신적인 밴드의 이야기를 자세히 소개합니다.

 

밴드의 형성과 초기 역사

The Stone Roses는 1983년 맨체스터에서 결성되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보컬리스트 Ian Brown과 기타리스트 John Squire가 펑크 록에 대한 공통된 사랑을 바탕으로 밴드를 시작했습니다. 초기 라인업은 Ian Brown(보컬), John Squire(기타), Pete Garner(베이스), Simon Wolstencroft(드럼)으로 구성되었으나, 후에 Gary 'Mani' Mounfield(베이스)와 Alan 'Reni' Wren(드럼)이 합류하며 클래식 라인업이 완성되었습니다.

Brown과 Squire는 맨체스터 남부의 중산층 지역인 Timperley에서 성장했습니다. 두 사람은 4살 때 첫 만남을 가졌지만, 음악적 교류는 10대 후반에서야 시작되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둘 다 처음에는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Brown은 교도소에서 일하는 것을 고려했고, Squire는 미술 학교를 다니며 화가가 되기를 꿈꿨습니다. 실제로 Squire의 미술적 재능은 나중에 앨범 커버와 밴드의 시각적 아이덴티티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1980년대 초 맨체스터는 Joy Division(후에 New Order가 됨), The Smiths, The Fall과 같은 밴드들이 활동하던 역동적인 음악 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환경은 The Stone Roses의 형성에 중요한 배경이 되었습니다. 밴드 이름 'The Stone Roses'는 Squire가 제안한 것으로, 서로 대조되는 두 단어의 조합이라는 아이디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처음 6개월 동안 연습만 했던 이들은 1984년 10월 23일 런던의 Moonlight Club에서 Pete Townshend의 오프닝 무대로 첫 공연을 가졌습니다.

초기 The Stone Roses는 The Smiths와 비슷한 사운드로 시작했으나, 이들만의 독특한 정체성을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1985년 그들은 첫 싱글 'So Young/Tell Me'를 자신들의 레이블 Thin Line Records를 통해 발매했습니다. 이 싱글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밴드의 첫 공식 발매작으로서 의미가 있었습니다.

1986년 Pete Garner가 밴드를 떠나고 1987년 Gary 'Mani' Mounfield가 합류하면서 밴드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Mani의 합류는 밴드의 사운드에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왔으며, 그의 펑키한 베이스 라인은 The Stone Roses 사운드의 핵심 요소가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밴드는 Garage Flowers라는 데모 앨범을 녹음했는데, 이것은 후에 공식 발매되지는 않았지만 컬렉터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게 됩니다.


데뷔 앨범과 폭발적인 성공

1988년, The Stone Roses는 작은 독립 레이블 Silvertone Records와 계약을 맺고 첫 정규 앨범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프로듀서 John Leckie와 함께 작업했는데, 그는 Pink Floyd, Radiohead 등과 작업한 경험이 있는 베테랑이었습니다. 이 선택은 밴드에게 매우 중요한 결정이었으며, Leckie의 경험과 감각은 앨범의 사운드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1989년 5월 2일 발매된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 'The Stone Roses'는 발매 당시에는 상업적으로 즉각적인 히트를 기록하지 못했습니다. 앨범은 UK 차트에서 32위에 올랐지만, 입소문과 음악 비평가들의 찬사를 통해 서서히 인기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앨범의 첫 트랙인 'I Wanna Be Adored'는 간단하지만 강력한 베이스 라인으로 시작해 점차 강도를 높이며, Brown의 자신감 넘치는 보컬로 이어지는 명곡입니다.

앨범에는 'She Bangs The Drums', 'Waterfall', 'Made of Stone' 등의 히트곡이 포함되었으며, 특히 '(Song for My) Sugar Spun Sister'와 'This Is the One'은 멜로디의 아름다움과 가사의 깊이로 주목받았습니다. 앨범의 마지막 트랙 'I Am the Resurrection'은 거의 9분에 달하는 대곡으로, 중반부부터 시작되는 인스트루멘탈 섹션은 밴드의 뛰어난 연주 실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앨범의 사운드는 60년대 사이키델릭 록과 현대적인 댄스 비트, 펑크의 요소를 결합한 것이었습니다. Reni의 복잡한 드럼 패턴, Mani의 그루비한 베이스 라인, Squire의 멜로딕한 기타 솔로, 그리고 Brown의 독특한 보컬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이 앨범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큰 인정을 받았으며, 오늘날 영국 음악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앨범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앨범 발매 이후, 1989년 11월 'Fools Gold/What the World Is Waiting For'라는 더블 A사이드 싱글을 발매했는데, 이는 UK 차트 8위까지 오르며 밴드의 첫 Top 10 히트가 되었습니다. 특히 'Fools Gold'는 원래 B사이드로 계획되었지만, 강력한 그루브와 독특한 사운드로 밴드의 대표곡이 되었습니다. 이 곡은 댄스 플로어에서도 히트했으며, 록 밴드의 음악이 클럽 문화와 교차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1989년 11월, The Stone Roses는 BBC의 인기 음악 프로그램 'Top of the Pops'에 출연하여 'Fools Gold'를 연주했습니다. 이 출연은 밴드의 인지도를 크게 높였으며, 특히 그들의 독특한 스타일과 태도는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같은 해 BBC의 'The Late Show' 출연 중 전원이 끊기는 해프닝이 있었는데, 이때 Ian Brown이 "아마추어들!"이라고 외친 장면은 밴드의 반항적 이미지를 강화하는 유명한 사건이 되었습니다.


매드체스터 씬과 스파이크 아일랜드 공연

The Stone Roses는 '매드체스터(Madchester)'라고 불리는 음악 및 문화 운동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이 용어는 1989년 후반 음악 언론에서 맨체스터의 활기찬 음악 씬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록 음악과 댄스 음악의 융합을 특징으로 했습니다. Happy Mondays, Inspiral Carpets, The Charlatans, 808 State 등의 밴드들이 이 씬의 주요 주자였습니다.

매드체스터 씬은 단순한 음악 장르를 넘어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었습니다. 이 시기에 맨체스터의 유명한 나이트클럽 The Haçienda(팩토리 레코드의 Tony Wilson이 설립)는 이 운동의 중심지였으며, 여기서 록 음악과 하우스 음악이 공존했습니다. 약물 문화, 특히 에크스터시의 사용이 널리 퍼졌고, 이는 음악과 패션 스타일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1990년 5월 27일, The Stone Roses는 그들의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공연 중 하나인 스파이크 아일랜드 콘서트를 개최했습니다. 이 공연은 리버풀 근처의 황폐한 공업 지역에서 열렸으며, 27,000명 이상의 관객이 참석했습니다. '배기 세대의 우드스탁'이라고 불릴 만큼, 이 공연은 단순한 음악 이벤트를 넘어 문화적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스파이크 아일랜드 공연의 준비는 엄청난 도전이었습니다. 밴드는 이전에 없었던 규모의 공연을 계획했고, 장소의 접근성, 음향 문제, 날씨 위험 등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공연 당일, 많은 관객들이 사운드 시스템의 문제로 무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는 음악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는 불만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벤트는 90년대 영국 음악 역사에서 중요한 순간으로 기억됩니다.

스파이크 아일랜드 공연은 The Stone Roses의 인기가 절정에 이른 시기에 있었으며, 이들이 영국 음악 씬을 얼마나 지배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이 공연 이후, 밴드는 법적 문제로 인해 새 음악을 발표하지 못하는 어려운 시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법적 분쟁과 'Second Coming'

데뷔 앨범의 성공 이후, The Stone Roses는 Silvertone Records와의 계약에 불만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밴드는 자신들이 받는 로열티가 너무 적다고 느꼈고, 더 좋은 조건을 원했습니다. 1990년, 밴드는 Silvertone과의 계약을 끝내고 새로운 레이블로 이동하려 했으나, Silvertone은 법정에서 이를 막았습니다.

이어진 법적 분쟁은 거의 2년 동안 지속되었으며, 이 기간 동안 밴드는 새 음악을 공식적으로 발매할 수 없었습니다. 이 법적 전투는 밴드의 모멘텀을 심각하게 손상시켰으며, 많은 팬들은 그들이 다시 복귀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가졌습니다. 결국 1991년 5월, 밴드는 소송에서 승리하여 Silvertone과의 계약에서 벗어났고, Geffen Records와 새로운 계약을 맺었습니다. 이 계약은 당시 영국 밴드로는 최대 규모인 약 1천만 파운드에 달하는 것이었습니다.

새 레이블과 계약한 후, The Stone Roses는 두 번째 앨범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하지만 앨범 제작 과정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밴드는 완벽주의적 성향을 보이며 녹음을 여러 번 다시 하기도 했고, John Squire가 점점 더 창의적인 통제권을 가지려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내부 긴장은 밴드 내 역학 관계에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1994년 12월 5일, 5년간의 기다림 끝에 'Second Coming'이 마침내 발매되었습니다. 앨범은 UK 차트 4위에 올랐으나, 첫 앨범 이후 높아진 기대치에 비해 비평가들의 반응은 엇갈렸습니다. 음악적으로 이 앨범은 첫 앨범과 상당히 달랐습니다. 사이키델릭 팝에서 블루스와 하드 록 영향이 더 두드러진 사운드로 변화했으며, Squire의 기타 연주가 더 중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앨범의 첫 싱글 'Love Spreads'는 UK 차트 2위에 오르며 좋은 성적을 거뒀고, 'Ten Storey Love Song'도 상당한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앨범은 데뷔작의 마법 같은 완성도와 혁신성을 재현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특히 'How Do You Sleep', 'Tears', 'Your Star Will Shine'과 같은 곡들은 밴드의 새로운 방향성을 보여주었지만, 일부 팬들은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이 시기에 밴드는 투어를 시작했으나, 새로운 어려움에 직면했습니다. 1995년 3월, Reni가 밴드를 떠나겠다고 발표했으며, 이는 밴드의 사운드에 큰 타격이었습니다. Reni는 뛰어난 기술과 독특한 스타일로 유명했으며, 많은 이들이 그를 그 시대 최고의 드러머 중 한 명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밴드는 Robbie Maddix를 새 드러머로 영입하고 투어를 계속했습니다.


해체와 멤버들의 솔로 활동

밴드 내부의 긴장은 계속해서 고조되었고, 1996년 4월 John Squire가 밴드를 떠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는 성명을 통해 "더 이상 그룹의 미래에 기여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Squire의 탈퇴는 밴드의 창의적 핵심이 사라진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는 즉시 The Seahorses라는 새 밴드를 결성하여 1997년 'Do It Yourself' 앨범을 발표했습니다.

Brown과 Mani는 Aziz Ibrahim을 새 기타리스트로 영입하여 The Stone Roses를 계속 유지하려 했지만, 밴드는 이미 핵심 구성원 두 명을 잃은 상태였습니다. 1996년 8월 Reading Festival에서의 공연은 재앙적이었습니다. Brown의 보컬 퍼포먼스는 심하게 비판받았고, 이 공연은 종종 그들의 최악의 순간으로 언급됩니다. 1996년 10월, 밴드는 공식적으로 해체를 발표했습니다.

밴드 해체 후, 멤버들은 각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Ian Brown은 성공적인 솔로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1998년 데뷔 솔로 앨범 'Unfinished Monkey Business'를 시작으로 여러 앨범을 발표했으며, 특히 'F.E.A.R.'와 같은 히트곡을 만들었습니다. 그의 솔로 작업은 Stone Roses와는 다른 전자적 요소와 다양한 영향을 받은 사운드를 특징으로 했습니다. Brown은 영국 솔로 아티스트로서 상당한 성공을 거두며, 여러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로 공연했습니다.

John Squire는 The Seahorses 해체 후, 2002년과 2004년에 두 장의 솔로 앨범을 발표했지만, 점차 음악보다는 미술 활동에 집중했습니다. 그는 추상화가로서 여러 전시회를 열었으며, 그의 작품은 밴드 시절 앨범 커버에서 보여준 그의 미술적 재능의 연장선이었습니다.

Mani는 1996년 Primal Scream에 합류하여 2011년까지 활동했습니다. 그는 'Vanishing Point', 'XTRMNTR', 'Evil Heat' 등의 앨범에 참여하며 밴드의 중요한 구성원이 되었습니다. Mani의 독특한 베이스 스타일은 Primal Scream의 사운드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Reni는 밴드 탈퇴 후 상대적으로 조용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The Rub라는 밴드를 잠시 결성했지만, 음반을 발매하지는 않았으며, 대부분 음악계에서 멀어져 있었습니다. 그의 뛰어난 드럼 기술과 독특한 연주 스타일은 여전히 많은 드러머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놀라운 재결합과 그 이후

2011년 10월 18일, 음악 팬들에게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The Stone Roses가 원년 멤버 전원으로 재결합한다는 발표였습니다. 이는 15년 만의 복귀였으며, 많은 이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이었습니다. 멤버들 간의 갈등, 특히 Brown과 Squire 사이의 오랜 불화로 인해 재결합은 매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입니다.

재결합 발표 후, 밴드는 2012년 맨체스터 Heaton Park에서 세 번의 공연을 계획했습니다. 이 공연 티켓은 발매 14분 만에 완판되는 기록을 세웠으며, 추가 공연이 편성되었습니다. 이 놀라운 반응은 The Stone Roses가 여전히 많은 팬들의 마음속에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2012년 6월 29-30일과 7월 1일에 열린 Heaton Park 공연은 대성공이었습니다. 약 220,000명의 관객이 참석했으며, 밴드는 클래식 히트곡들을 연주하며 팬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습니다. 공연은 비평가들로부터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으며, 많은 이들이 밴드가 여전히 강력한 라이브 실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극찬했습니다.

이어서 밴드는 전 세계 투어를 진행했으며, Coachella, Fuji Rock Festival, V Festival 등 주요 페스티벌에 헤드라이너로 출연했습니다. 2013년까지 계속된 이 투어는 전 세계적으로 약 100만 장의 티켓을 판매했습니다.

2016년, 밴드는 11년 만에 새 싱글 'All For One'을 발표했으며, 이어서 'Beautiful Thing'도 공개했습니다. 이 곡들은 밴드의 전통적인 사운드를 유지하면서도 현대적인 프로덕션을 더한 것이었습니다. 팬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었지만, 일부 비평가들은 이 곡들이 그들의 최고의 작품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평가했습니다.

2016년과 2017년에는 맨체스터 Etihad Stadium과 런던 Wembley Stadium에서 대규모 공연을 가졌습니다. 특히 2017년 6월 24일 Glasgow에서의 공연이 밴드의 마지막 공연이 되었습니다. 공식적인 해체 발표는 없었지만, 이후 밴드는 더 이상의 활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음악적 스타일과 영향력

The Stone Roses의 음악은 여러 장르와 시대의 영향을 받은 독특한 혼합물이었습니다. 그들은 60년대 사이키델릭 록(특히 The Byrds와 초기 Pink Floyd), 펑크, 북부 소울, 펑크, 댄스 음악 등 다양한 스타일을 자신들만의 사운드로 재해석했습니다.

데뷔 앨범에서는 멜로디컬한 팝 요소와 탁월한 후크, 그리고 댄스 리듬이 결합되었습니다. John Squire의 기타 연주는 짐머 트윈스(The Smiths의 Johnny Marr)의 영향을 받았지만 독자적인 스타일로 발전했으며, 특히 차임벨 같은 맑은 톤의 아르페지오와 웨일같은 솔로가 특징적이었습니다. Reni의 드럼 연주는 정교하고 다채로웠으며, 많은 이들이 그를 당대 최고의 드러머 중 하나로 평가했습니다. Mani의 베이스는 멜로딕하면서도 강렬한 그루브를 제공했으며, Ian Brown의 특유의 나즈막한 보컬은 자신감과 태도를 완벽하게 전달했습니다.

가사적으로, Brown과 Squire는 종종 시적이고 암시적인 표현을 사용했으며, 젊음, 자유, 반항, 사랑 등의 주제를 다루었습니다. 특히 'Waterfall'의 "열정 없이 살기보다 불타오르며 죽는 게 낫다"와 같은 구절이나, 'I Am the Resurrection'의 메시아적 이미지는 그들의 음악에 영적이고 초월적인 차원을 더했습니다.

The Stone Roses의 영향력은 영국 음악을 넘어 전 세계로 확장되었습니다:

  1. 브릿팝의 창시: 그들은 Oasis, Blur, Pulp 등이 주도한 브릿팝 운동의 직접적인 선구자였습니다. 특히 Oasis의 Gallagher 형제는 여러 차례 Stone Roses를 그들의 가장 큰 영감으로 언급했습니다. Noel Gallagher는 "Stone Roses의 첫 앨범을 듣지 않았다면, Oasis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2. 인디 록의 진화: 그들은 댄스 음악의 요소를 기타 중심의 음악에 성공적으로 결합하여, 이후 The Chemical Brothers, Primal Scream, Happy Mondays 등이 발전시킨 록과 댄스의 융합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3. 현대 밴드들에 대한 영향: Arctic Monkeys, Kasabian, The Killers, The Courteeners 등 2000년대 이후 등장한 많은 밴드들이 Stone Roses의 영향을 받았음을 인정했습니다. 특히 Arctic Monkeys의 Alex Turner는 여러 인터뷰에서 Stone Roses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4. 맨체스터 음악 씬의 상징: 그들은 맨체스터를 세계적인 음악 도시로 확립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이로 인해 Oasis, The Smiths, Joy Division/New Order와 함께 맨체스터 음악의 '빅 4'로 여겨집니다.

시각적 이미지와 문화적 영향

The Stone Roses는 음악뿐만 아니라 시각적 이미지와 패션에서도 독특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John Squire는 미술에 재능이 있었으며, 밴드의 앨범 커버와 싱글 자켓을 디자인했습니다. 특히 데뷔 앨범의 커버는 Jackson Pollock에게 영향을 받은 추상 표현주의 스타일의 작품으로, 이후 많은 인디 밴드들의 앨범 아트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패션적으로, 밴드는 60년대 모드 스타일(깔끔한 헤어컷과 폴로 셔츠)과 축구 캐주얼, 배기 진, 플래어 진 등 독특한 조합을 선보였습니다. 특히 Reni의 버킷 햇(어부모자)은 팬들 사이에서 유행을 창출했고, 'Reni hat'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90년대 초 영국 청년 문화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밴드의 문화적 영향력은 음악과 패션을 넘어 더 넓은 영역으로 확장되었습니다:

  1. 영국 정체성의 재정의: 80년대 후반 영국은 대처 정부 하에서 사회적, 경제적 변화를 겪고 있었습니다. The Stone Roses는 자신감 넘치는 음악과 태도로 새로운 세대의 영국 정체성을 표현했으며, 특히 북부 잉글랜드의 자부심을 고취시켰습니다.
  2. 클럽 문화와 라이브 음악의 융합: 그들은 라이브 밴드 음악과 레이브 문화 사이의 다리를 놓았으며, 이로 인해 90년대 영국 음악 씬이 더욱 다양하고 역동적으로 발전했습니다.
  3. DIY 에토스의 영향: 밴드는 초기에 독립적으로 활동하며 DIY(Do It Yourself) 정신을 체현했고, 이는 이후 수많은 인디 밴드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4. 영화와 문학에서의 참조: Danny Boyle의 영화 'Trainspotting'을 비롯한 여러 영화와 Irvine Welsh 같은 작가들의 작품에서 The Stone Roses의 영향이 드러납니다. 특히 그들의 음악과 태도는 90년대 영국 청년 문화를 묘사하는 작품들에서 자주 참조되었습니다.

레거시와 재평가

시간이 흐르면서 The Stone Roses의 음악, 특히 그들의 데뷔 앨범은 계속해서 재평가되며 더 큰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2004년 NME와 Observer Music Monthly는 그들의 데뷔 앨범을 '영국 역사상 최고의 앨범'으로 선정했으며, Rolling Stone, Pitchfork, BBC 등 여러 매체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앨범' 목록에 항상 포함됩니다.

밴드의 레거시는 여러 다큐멘터리와 책을 통해 기록되었습니다. 2012년 Shane Meadows 감독의 다큐멘터리 'Made of Stone'은 밴드의 재결합을 담아냈으며, John Robb의 저서 'The Stone Roses and the Resurrection of British Pop'과 Simon Spence의 'The Stone Roses: War and Peace' 등은 밴드의 역사를 상세히 기록했습니다.

The Stone Roses의 가장 큰 레거시는 아마도 그들이 보여준 '가능성'일 것입니다. 그들은 상업적 성공과 예술적 진정성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음을 증명했으며, 기존의 장르를 뛰어넘는 창의적인 실험이 얼마나 강력한 반향을 일으킬 수 있는지 보여주었습니다. 그들의 음악은 시대를 초월한 보편성을 가지고 있으며, 새로운 세대의 리스너들에게도 계속해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비록 The Stone Roses가 더 많은 앨범을 발매하지 못한 것은 음악사의 큰 아쉬움으로 남지만, 그들이 남긴 작품과 영향력은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습니다. Brown, Squire, Mani, Reni의 독특한 케미스트리는 특별한 시간과 장소에서 마법 같은 음악적 순간을 창조했고, 이는 영국 음악의 진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마치며

The Stone Roses는 비교적 짧은 활동 기간에도 불구하고 영국 음악사에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겼습니다. 그들의 데뷔 앨범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신선하고 영감을 주며, 새로운 세대의 음악가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밴드의 저항 정신과 자신감, 그리고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실험정신은 오늘날의 음악계에도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그들의 음악적 유산은 단순히 노래를 넘어 하나의 태도, 세계관, 그리고 정신을 담고 있습니다.

Ian Brown의 말처럼 "과거는 당신의 것이었지만, 미래는 나의 것이다"라는 그들의 가사는 The Stone Roses가 체현한 선구자적 정신을 완벽하게 요약합니다. 그들은 단지 과거의 음악적 전통을 따르기보다는 새로운 길을 개척했고, 영국 음악의 미래를 재정의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들을 수 있는 많은 음악에는 The Stone Roses의 DNA가 흐르고 있습니다. 그들의 영향력은 계속해서 확장되고 있으며, 그들의 음악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The Stone Roses는 진정한 의미에서 시대를 초월한 밴드이며, 영국 음악의 진정한 보물입니다.